-딜링박스 태웅-
3백만 홍콩달러 가져와요.
필립 최의 입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튀어나온 금액은 게임을
하고 있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3백만 홍콩달러라는 금액은 딜러가 가지고 있는 칩의 합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카지노 측은 칩을 날라오기에 분주했다.
게임은 잠시 중단되고 딜러들은 칩을 세느라 정신이 없었다.
미안합니다, 여러분.
필립 최는 게임을 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다.
천만에요.
사람들은 자기의 일은 아니었지만 이런 장면을 보는 것
자체가 신나는 모양이었다.
미국이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위력을 가진다.
돈을 가진 자가 곧 정의롭고 강한 자며,
멋있는 자다.
이윽고 필립 최의 앞에 산더미 같은 칩이 쌓이자
사람들은 우군을 얻은 듯한 표정으로 다시 게임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이렇게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라면
필시 실력도 상당하리라 믿었다.
강자와 같이 게임을 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특히 자신감을 잃은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자, 여러분 배팅하십시오.
딜러의 입에 밴 채근에 따라 사람들은 각자 칩을 옮겼다.
뱅커 혹은 플레이어의 두 자리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이 게임은 무척 단순해 보여 초심자도 쉽게 빠져든다.
그러나 20~30년의 경력을 가진 도박사들에게
가장 어려운 게임도 역시 이 바카라다.
어느 카지노든 바카라 룸을 따로 마련해 놓는데,
물론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한 그 곳은 제일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모두 배팅하셨습니까?
이제 마지막 콜입니다.
딜러는 필립 최를 흘끗 쳐다봤다.
배팅할 기미가 안 보이자 바로 카드를 건넸다.
카드는 우선 플레이어에 배팅한 사람들 중 최고액자에게 보내진다.
처음에는 두 장의 카드, 그리고 경우에 따라
한 장을 더 받기도 하고 그냥 이기거나 지기도 한다.
독일에서 만들어진 이 게임은 상당히 복잡하다.
뱅커와 플레이어 간의 숫자 관계에 따라 각각 한 장의 카드가
더 주어지거나 않거나 한다.
브루스는 이제껏 늘 최고액을 배팅함으로써 항상 자신이 카드를
받아 쪼아보곤 했다.
이번 판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신중한 손길로 자신의 카드를 귀퉁이부터 천천히 밀어올렸다.
바카라(0)가 먼저 보이고 다음으로 올라오는 카드에는
점이 찍혀 있었다.
포 사이드. 네 면에 모두 점이 찍혀 있었다.
10 아니면 9였다.
카드를 들추는 브루스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배팅액은 30만 홍콩달러. 엄청난 배팅이었다.
카지노 측과 특별히 배팅 상한액에 대해 협의하지 않은
한 최고액의 배팅이었다.
10이라면 상하에 하나씩의 점이 찍혀 있을 것이다.
9라면 상하는 텅 빈 공간이고 가운데에 하나의 점이 박혀 있을 것이다.
가늘게 떨리던 브루스의 손길에 점차 자신감이 배었다.
내추럴.
브루스의 자신 있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8이나 9를 내추럴이라고 한다.
이것은 상대에게 카드가 한 장 더 갈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뱅커에 배팅한 상대가 한 번에 두 장의 카드로
이편을 이기지 못하면 그냥 지고 마는 것이다.
상대는 브루스의 내추럴을 보자 이내 포기한 손길로 카드를
날려버리고 말았다.
그가 던진 두 카드의 합계는 6이었다.
플레이어에 배팅해서 이기면 커미션이 없다.
반면 뱅커에 배팅하면 5퍼센트의 커미션을 카지노 측에 내야 한다.
따라서 룰은 뱅커 쪽에 약간 유리하게 되어 있다.
커미션도 떼지 않은 30만 홍콩달러의 칩을 끌어당기는
브루스를 보는 사람들의 얼굴에 경외감이 서렸다.
기껏해야 2~3천 홍콩달러, 혹은 5천 홍콩달러 배팅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존재가 어떻게 비칠 것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브루스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망설임의 기색이 비쳤다.
그는 원래 이번 판만 이기면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브루스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과
다시 한 번 이길 수 있을 것만 같은 요행 심리가
그를 부추기는 모양이었다.
모두 배팅하셨습니까? 이제 마지막 콜입니다.
다시 반복되는 딜러의 음성에 브루스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칩에 갖다 댔다.
다시 플레이어에 30만 홍콩달러를 갖다 놓는 그의손이 가늘게 떨렸다.
사람들은 다투어 그의 뒤를 따라 플레이어에 배팅을 했다.
사람들은 그를 이 판의 리더로 보고 있었다.
뱅커에 30만.
너무도 안정된 필립 최의 목소리가 사람들
의 귀에 들어와 박혔다.
사람들은 필립 최의 얼굴에 시선을 모았다.
안정된 목소리만큼이나 안정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사람은 얼른 배팅 금액을 줄이고,
또 어떤 사람은 아예 배팅을 바꿔놓았다.
브루스의 표정이 상기됐다.
불안에 떠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이 무서운 판에서도 인간의 자존심은 고약하게 작용했다.
그는 이제까지의 영웅적 위치에 스스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브루스는 오기가 발동하는지 냉소를 흘리며 필립 최를 쏘아보았다.
그러나 필립 최는 게임 이외의 것에는 아무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는 듯
무심한 얼굴로 딜러가 카드 나누는 동작만 쳐다보고 있었다.
카드는 먼저 브루스에게 배달되었다.
브루스의 가늘게 떨리는 손길이 두 장의 카드위에서 잠시 멈추었다.
브루스는 남몰래 심호흡을 했다.
한 장의 바카라가 먼저 보였다.
다음은 제법 많은 점이 보였다. 브루스의 표정이 밝아졌다.
7, 8, 아니면 9거나 10일 것이다.
세븐.
약간의 불안이 깔린 목소리였으나 어쨌거나 상당한 우위를 점한 데서
나오는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7도 역시 다음 카드를 받지 않는다.
상대는 8 혹은 9일 경우 무조건 이기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는
다시 한 장의 카드를 받는다.
그러나 7이 못 된 상황에서 한 장의 카드를 더 받아
7을 이긴다는 것은 확률이 무척 낮기 때문에
플레이어의 7은 사실 매우 높은 수였다.
필립 최가 뱅커의 카드를 받았다.
그의 손길은 무심하게 두 장의 카드를 밀어넘겼다.
6이었다.
7과 6은 상극이다.
6은 7에 대해서 무조건 지는 것이 룰이다.
한 장의 카드를 더 받을 기회가 없는 것이다.
식스.
필립 최의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순간 브루
스는 자신도 모르게 테이블을 쳤다.
예스.
참으로 깊은 감회가 밴 목소리였다.
플레이어 윈. 세븐 오버 식스.
딜러의 목소리가 채 귀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브루스는
30만 홍콩달러를 같은 플레이어에 놓았다. 기세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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